고리원전 이호기 재가동 계속운전 허가

부산 기장에 위치한 고리 원전 2호기가 2년 반 만에 재가동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13일 ‘고리 원자력발전소 2호기 계속운전 허가’를 의결하면서, 기존 원전의 계속운전에 물꼬가 트였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허가로 전력공급 안정성, 탄소중립 달성, 지역경제에 이르는 다층적 파급효과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리원전 2호기 재가동의 의미와 배경

고리 원전 2호기의 재가동은 단순한 설비 복귀를 넘어, 국가 에너지 전략 전환의 상징적 이정표로 해석된다. 그동안 2년 반에 걸친 장기 정지는 규제기관의 면밀한 점검과 보완조치 이행, 그리고 사업자의 안전성 강화 작업이 중첩된 결과였다. 이번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계속운전을 허가했다는 사실은, 법적·기술적 요건을 충실히 충족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국내 원전의 고령화 관리 역량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음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재가동은 전력수급의 계절적 변동성과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응하는 즉효성 높은 카드다. 석탄과 가스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규모 기저전원으로서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시대적 과제에서도 원자력의 기여도는 분명하다. 재가동으로 확보되는 무탄소 전력은 전력 믹스의 균형을 섬세하게 보완하며, 산업계의 전기요금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지역사회 관점에서도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협력 중소기업의 가동률 회복, 정비·안전 관련 일자리 확대, 지역 상권의 체감 회복 등 연쇄 효과가 기대된다. 동시에 주민 수용성 제고를 위한 상설 소통 창구, 실시간 방사선 정보 공개, 비상대응 훈련의 정례화 등 ‘보이는 안전’의 제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재가동의 의미가 지속 가능한 신뢰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안전과 투명성, 참여의 세 축이 균형 있게 작동해야 한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이번 결정이 다른 노후 원전의 의사결정에도 참조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선(先)안전·후(後)가동’이라는 원칙은 단 한 치의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된다. 기기 노화 관리, 지진·해일 등 복합재난 대비, 디지털 제어계통의 단계적 교체 같은 중장기 과제는 재가동 이후가 오히려 본게임이다. 허가를 출발점으로 삼아, 국제 기준과 국내 현실을 정교하게 접목한 안전 업그레이드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계속운전 조건과 안전성 확보 로드맵

계속운전 허가는 법·기술·운영의 3중 안전망을 전제로 한다. 첫째, 법적 측면에서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 환경영향 재검토, 주민 보호계획 갱신 같은 절차적 요건이 촘촘히 요구된다. 둘째, 기술적 측면에서는 노심건전성, 배관·용기 취성화, 내진성능, 비상전원 신뢰도 등 핵심 항목에 대한 보강과 검증이 단계별로 시행된다. 셋째, 운영 측면에서는 안전문화 내재화, 휴먼에러 저감 프로그램, 정비 품질관리의 정례감사 등 상시적 관리체계가 필수다. 이러한 요소들이 교차 검증되면서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낮춘다.
특히 계속운전은 ‘조건부’라는 점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규제기관의 추가 요구사항 이행, 정기점검 결과에 따른 즉각적 보수, 설계기준 초과 이벤트 대비 절차 개선 등이 계획서에 명시되고, 이행상황은 투명하게 공표돼야 한다. 국제 동향을 반영한 최신 안전기준(예: 중대사고 관리지침 고도화, 수소제거 시스템 신뢰도 향상, 격납건물 필터형 배기 검토 등)도 순차적으로 반영해나갈 필요가 있다.
실무 로드맵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설비: 노후 핵심기기의 상태기반정비(CBM) 확대, 디지털 계측제어(I&C) 단계적 업그레이드
- 구조: 내진 증강 보강, 수소폭발 완화 설비 신뢰도 점검
- 운영: 이중확인(Double-check) 절차 정례화, 피로 누적 관리, 외주 정비사 안전 교육 강화
- 비상대응: 다중 비상전원 추가 점검, 가동·정지 전환 시나리오별 훈련 강화, 주민대피 절차 숙지
- 투명성: 데이터 포털 개방, 월간 안전 리포트 발간, 지역협의체 상설 운영
이러한 로드맵은 ‘계획→실행→검증→개선’의 선순환 PDCA 체계로 작동해야 하며, 규제기관과 사업자, 지역사회가 공동의 언어로 성과를 평가할 때 비로소 실효성이 확보된다. 결국 계속운전은 기술의 문제가자 동시에 신뢰의 문제다. 신뢰를 설계하고 운영하며, 수치와 행동으로 입증하는 과정이 성패를 좌우한다.

허가 이후 과제: 소통, 규제, 투명성

허가 이후의 핵심 과제는 ‘지속 가능한 신뢰’의 제도화다. 첫째, 소통 측면에서 정기 주민 간담회, 학교·상공계 대상 안전브리핑, 실시간 방사선 데이터 공개를 통해 체감형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단방향 공지는 불충분하다. 질의응답, 현장 공개, 모의훈련 참관 등 참여형 프로그램을 병행해, 우려를 사실과 경험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규제 측면에서는 독립적이고 예측 가능한 규제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불확실한 기준 변경은 사업자와 지역사회의 신뢰를 동시에 훼손한다. 따라서 사전 예고제, 영향평가, 의견수렴을 제도화해 규제의 투명성과 정합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국제 규제기관과의 정보교류, 동형·유사 노형 사례 비교평가를 통해 국내 기준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투명성 측면에서는 데이터를 ‘공개’에서 더 나아가 ‘이해 가능’하게 제공해야 한다. 일반 시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시각화, 해설, 위험소통 가이드를 붙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사건·사고, 경미한 이탈사항까지 포함한 전수 공개와 재발방지 대책의 이행 점검 결과를 주기적으로 공유하면, 정보 비대칭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경제와의 연계도 세심하게 설계해야 한다. 정비·검사 특화 일자리, 안전 전문인력 양성, 지역 기업의 공급망 참여 확대는 경제적 선순환을 촉진한다. 동시에 지역 상생기금, 에너지 복지 프로그램, 청년 기술교육 등의 사회공헌을 체계화하면, 허가의 의미가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 요컨대 허가 이후의 진짜 성과는 ‘가동률’이 아니라 ‘신뢰율’이라는 지표로 측정되어야 한다. 결론 고리 원전 2호기의 재가동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계속운전 허가는, 전력공급 안정과 탄소중립 달성,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전략적 의미를 지닌 결정이다. 동시에 그것은 안전성 강화, 예측 가능한 규제, 참여적 소통이라는 고도의 실행력을 요구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재가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조건 이행과 성과 공개가 정교하게 맞물릴 때 비로소 신뢰가 축적된다.
다음 단계로는 1) 허가 조건의 이행 일정과 점검 결과를 월 단위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2) 주민·전문가·규제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협의체를 가동해 피드백 반영 속도를 높이며, 3)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설비·운영 업그레이드를 로드맵대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유사 원전의 사례 비교와 외부 독립평가를 병행하면, 안전성과 수용성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이번 결정을 지속 가능한 신뢰로 전환하기 위한 모든 이해관계자의 성실한 실행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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